脫달러와 글로벌 리밸런싱, 독일 증시와 유로화로 '피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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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글로벌 무역 질서를 재편하는 데 무게를 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리밸런싱을 일으키고 있다.
사상 최고치 기록을 세운 독일 증시의 DAX 지수와 연초 이후 20년래 최대 폭으로 뛴 유로화가 자산시장 재편을 드러내는 단면에 해당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주요국 전반을 겨냥하고 있지만 특히 독일 증시와 유로화의 강세 흐름이 두드러진 데는 독일 정부의 재정 완화가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기금과 보험사를 중심으로 해외 대형 기관 투자자들의 탈(脫) 달러 움직임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 해외 투자자 미국 주식 역대 최대 '팔자' =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지난 3월 해외 펀드 매니저들이 미국 주식을 사상 최대 규모로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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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블룸버그] |
이와 별도로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4월 유럽 지역 상장지수펀드(ETF)들의 미국 주식 및 채권 매도 물량이 25억유로에 달했다. 이 역시 2023년 초 이후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5월 들어서도 해당 펀드는 미국 주식을 매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닝스타는 보고서를 내고 "미국 자산과 달러화로 글로벌 자금이 밀려 들었던 장기 추세가 뒤집히고 있다"고 전했다.
픽텟 애셋 매니지먼트의 루카 파올리니 수석 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다소 느리지만 미국에서 유럽을 포함한 다른 지역으로 자산시장의 리밸런싱은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핀란드의 베리타스 연금보험이 밸류에이션 고평가를 이유로 1분기 미국 주식의 비중을 축소했고, 운용 자산 1490억 호주 달러 규모의 호주 연기금 유니슈퍼의 존 피어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4월 팟캐스트를 통해 "미국 자산의 편입이 정점을 맞았다"며 비중을 축소할 뜻을 내비쳤다.
1분기 덴마크의 연금 펀드 업계는 2022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주식을 매도하고, 유럽 주식을 2018년 이후 최대 규모로 사들였다.
BNP 파리바는 유럽 연금 펀드가 미국 자산의 비중을 2015년 수준으로 낮출 경우 3000억유로 규모의 매물을 토해 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일부에서는 미국에서 자본 순유출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글로벌 자본의 '탈세계화'가 진행되는 속도와 규모에 따라 미국 주식 및 채권 시장과 달러화에 구조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독일 증시 최고치 랠리 = 독일 DAX 지수는 지난 5월9일(현지시각) 장중 2만3543.27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 기록을 세웠다.
이에 따라 독일 증시는 유럽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협박에 따른 손실을 모두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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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사진=블룸버그] |
미국과 영국의 무역 협상 타결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중국 측과 회동이 매수 심리를 부추겼지만 독일 증시의 보다 근본적인 강세 요인은 재정 완화라는 데 월가는 한 목소리를 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힌 이후 독일 정부는 1조유로에 달하는 재정 완화 및 인프라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독일을 필두로 한 유로존의 재정 긴축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인 경제 성장 둔화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장기간에 걸쳐 주식시장의 언더퍼폼을 초래했다. 때문에 독일의 재정 완화가 주식시장에 커다란 호재라는 데 월가는 한 목소리를 낸다.
1조유로 규모의 독일 재정 완화가 독일은 물론이고 유로존 전반의 거시경제 사이클에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
바클레이스의 엠마뉘엘 카우 유럽 주식 전략 헤드는 FT와 인터뷰에서 "유럽에서도 특히 독일 증시가 강한 이유는 새 정부의 재정 완화 움직임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식 뿐 아니라 최근 독일 채권시장이 상승 랠리를 펼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DAX 지수는 연초 이후 18% 가까이 급등했다. 대표적인 방산주 라인메탈이 170% 치솟는 등 방위 섹터가 증시 전반의 상승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도이체방크가 연초 이후 43% 랠리하는 등 금융주도 강세 흐름을 타는 모습이다. 뉴욕증시 역시 최근 강한 반등을 연출하고 있지만 S&P500 지수가 연초 이후 4% 가까이 내렸고, 2월 고점과 여전히 커다란 거리를 둔 상황을 감안할 때 대조적이라는 평가다.
이 밖에 독일을 포함한 유럽 증시의 상대적인 저평가도 대형 기관 투자자들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갈아타는 이유로 꼽힌다.
◆ 유로화 랠리 이제 시작 = 외환시장에서도 리밸런싱이 두드러진다. 연초 이후 달러 인덱스가 7% 가량 하락한 반면 유로화가 달러화에 대해 연초 이후 7.8% 뛰었다. 이는 20년래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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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달러 환율 추이 [자료=블룸버그] |
지난 4월 유로/달러 환율은 1.15달러까지 뛰었다. 유로화가 달러화에 대해 2021년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른 셈이다. 당시 고점을 기준으로 유로화의 상승폭은 14%에 달했다.
아문디의 안드레아스 커닝 전략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외환시장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기류 변화가 더 오래, 더 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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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1일~5월8일 기준 유로/달러 등락 추이 [자료=블룸버그] |
지난 15년 동안 유럽 자산운용사들이 사들인 달러 자산이 수 조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추세적인 '팔자'에 따른 잠재적인 충격이 상당히 클 것이라고 월가는 경고한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의 엘리어트 헨토브 매크로 정책 리서치 헤드는 "전세계적으로 달러 자산의 비중이 과도한 상태"라며 "리밸런싱으로 인해 유럽이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외환보유액 가운데 달러화의 비중이 60%에 이르고, 유로화의 비중은 20%로 커다란 간극을 벌인 상태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유로화 강세 흐름이 이제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유럽 투자자들이 보유한 달러 자산 중 상당 물량이 환 리스크에 대해 헤지하지 않은 상태다.
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전 수준으로 헤지를 강화할 경우 2조5000억달러 규모의 자산에 대해 신규 헤지를 설정하게 되고, 이는 달러화에 상당한 하락 압박을 가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로화 강세 역시 독일 증시 상승과 마찬가지로 재정 완화가 가져올 경제 성장 효과에 대한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모간 스탠리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짐 캐런 최고투자책임자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피벗(pivot)'이 과장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추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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